아주 어린시절. 나의 아빠는 친구들의 아빠와 달랐다. 아침이면 일찍 출근하시지 않고 내가 등교하는 그 시간까지 주무시던 아빠는 학원 선생님이셨다. 대구에 꽤나 유명한 학원의 강사셨던 아빠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에서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무슨 동굴속의 산신령 코너 따위를 들려주셨다. 수요일이나 토요일같이 4교시만 하고 돌아오는 날을 좋아했다. 집에 들어서면 항상 울리던 압력밥솥의 치키치키 하는 소리, 그 냄새, 윈도우 95에서 열심히 카드게임을 하던 아빠의 모습. 압력밥솥의 밥은 늘 전기밥솥으로 옮겨지고 누룽지는 숭늉이 되었다. 내 아빠의 기억나는 몇가지 취미라면 그 낮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개발되지 않은 칠곡을 돌아다니시거나, 여름날의 캠핑. 해마다 늘어가던 캠핑도구. 베란다 가득했던 화분들, 난초화분, 크리스마스때 정체불명의 나무를 캐와서는 거기에 트리를 꾸미고.. 어느해는 벚꽃나무 묘목을 가져와서는 아파트 곳곳에 심으셨단 얘길 들었던 것. 그리고 해마다 벚꽃 필 무렵이면 아파트 담장너머로 흩날리던 벚꽃을 보며 저건 우리 아빠의 작품이라며 뿌듯하던 내가 생각이 난다. 매 해 봄이면 피는 벚꽃을 보며 함께 살았던 세월보다 없이 지낸 지금까지의 삶에서 늘 아빠가 그립고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