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크림을 바른 손에서 나는 향이 좋아 손을 계속 코끝으로 갖다댄다. 귓가엔 음악이 흐른다. 분명,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손은 메말라 있다. 겨울에는 차가우며 메말랐지만 여름에는 뜨거우나 메마른다. 손에 물이 마를날이 없으니 자주 튼다. 긴 손가락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내 손의 모양으로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하지만 주름이 문제다. 고생을 참 많이 한 사람처럼 손에 주름이 많다. 그리고 손톱은 자주 부서지고 손톱과 손가락 사이가 자주 튿어진다. 결국엔 손에 피가 날때까지 그것들을 정리하다 흉한꼴이 반복되고 만다. 엉망이다. 하지만 손이 좋다. 아마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촉감을 디테일하게 조절 할 수 있는 것은 손인 것 같다. 혀로 느끼는 미각과는 다르다. 손끝의 느낌만으로도 누군가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 애무를 한다면 입술과 같은 수준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잡아줄 사람이 없으니 어찌됐든 상관 없다. 손에 바르는 핸드크림은 결국 자기만족이다-입술은 이야기가 다르다. 오랜만에 바른 크림이다. 아마 2년도 더 된 어느 봄날부터 사용하던 핸드크림일 것이다. 그만큼 오래된게 아니라 그때부터 같은 제품만 써왔다는 말이다. 끈끈한 손을 계속 코끝으로 갖다댄다. 향이 좋다.
그리고 음악도 좋다. 요근래 주로 듣던 귀가 찢어질듯한 기계음도 아닌, 심장이 터질듯한 저음도 아닌 잔잔한 pat metheny trio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다. 후덥지근하지만 가벼운 옷차림이라 밤의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들으니 더 좋다. 항상 걷던 길의 반대편을 걸어본다. 그쪽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고, 낯선 건물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 사람들은 술냄새를 풍기고 있다. 조금 역겹다. 다시 손을 코끝에 갖다댄다. 음악사이로 차의 소음과 벌래소리가 적절히 섞여 들려온다. 나는 낯선 길을 걷는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부터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음날까지 굳이 필요하지 않는다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대신 내가 가진 감각을 열어본다. 말없이 그것들을 느낀다.
실은 오늘은 꽤나 불쾌했다. 아니 요즘은 불쾌하다. 내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정기적인 신체적 변화때문만은 아니다.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웃으면서 넘어가면 좋다고 달려든다. 어디까지 허용해줘야 하는걸까. 역으로, 내가 당신에게 비슷한 대우를 해 준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봤는가. 하지만 이 역시도 조만간 끝날 문제이므로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는다. 마음도 쓰지 않는다. 다만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