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그쯤.
놀러가는 버스 안에서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뭐해? ...놀러가는 중이구나 이런 얘기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너는 알아야 할거 같아서” 라며 시작된 이야기는 S의 부고였다.
월요일에 휴가를 나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었다고, 휴가중에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다 사고가 나 차가 다 타버렸는데, 감식 결과가 주말에서야 나왔다며 연락이 왔다.
연락을 전해준 친구는 나의 대학동기 J였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상경해서 이런저런 일자리를 찾다가 내가 일자리를 소개시켜줬다. S가 있었던 커피회사였다. 그는 군대에 가고 J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사고소식을 알게되고, 나에게 연락을 준 것이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멍한 느낌에 가던길을 계속 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그의 죽음앞에 어쩔줄 몰라 해야했다.
커피때문에 알게된 사람이었다. 커피관련 카페에서 몇번의 모임을 가지다 알게 되었는데 마침 내 직장과 S의 직장이 가까웠고, 집으로 가는 방향도 비슷해서 종종 서로의 직장에 찾아가 같이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날들을 보냈었다.
어느날에는 인천 구월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던 카페내의 최고의 바리스타를 뽑는 행사를 한다며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그날 우리는 좀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느날에는 백화점에서 일했던 나는 마감세일즈음 식품관으로 내려갔다가 세일하는 볶음밥을 사서 S의 직장으로 찾아간적이 있었다. 마감시간을 넘겨서도 남아있던 그와 볶음밥을 나눠먹고, 커피를 내려마시며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날에는 홍대의 돼지뽈살을 먹으러 가서, 소주 몇병에 취해 홍대 놀이터 근처의 카페 M을 찾아갔었다. 우리는 신이났었고, 나는 휴대폰 연락을 받지 않고, 그는 손에 낀 반지를 뺐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연인이 있는 상태였다. 그 연인들에게 충실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퇴근길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지하철은 바로 집으로 가도 될 노선을 빙 둘러 갔다.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었나보다.
그런 길의 지하철 안에서 S는 나의 사진을 찍었다. 나름 예쁘게 웃는 얼굴이라 생각해서 나중에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의 연인이 내 사진을 보고 지웠다고 했다.
후에 시간이 지나 나는 그 사진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지구 밖 어느 우주에는 지구에서 소멸된 사진이 전송되어지는 공간이 존재한다고. 아마 그 사진을 많이 찾고 싶었나보다.
그런 길의 지하철 안에서 환승을 기다릴 때, 나의 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옆에 S가 있었지만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고,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서로 어떤 마음이었을까. 되짚는 기억만큼 희미하기만 하다.
그 해의 마지막날을 얼마 앞두고 우리는 다시 명동에서 만났다. 서로의 연인에게 가기 전에 그 해의 마지막을 함께 밥을 먹으며 보냈다.
새해가 밝았고, 나는 나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했다. 지방 어딘가에서 군복무를 하던 그를 찾아가 새해맞이를 하고 온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을 것이다. 난 아마 그때 마음에 폭풍이 몰아쳤던거 같다.
일도 그만두고,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S와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싸웠던 기억이 있다.
평소처럼 S를 찾아가 그의 라떼를 보며 나는 고집을 부렸다. 솔직히 이런거 그냥 보여주기식 아니냐고, 여기에 얼마만큼의 거품이 들어가고 우유가 들어가는지 아냐고, 카푸치노랑 라떼의 차이가 왜 그저 잔의 차이냐고.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였으면 될 일이었던거 같은데, 굳이 그를 설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고집 부리며.
그리고 나는 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달 뒤, 문득 S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죠?’ ‘그럼 잘 지내지’ ... ‘나 사실 당신 좋아했어요. 잘 지내요. ’ 라고.
그때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때도 버스 안이었는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가 입대를 한다는 소식에 서울을 가게 되었고, 친구를 만난다는 핑계삼아 그가 일하는 곳으로 향했다.
S는 여전히 커피를 좋아했고, 내게 커피를 한잔 줬다.
그 맛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 후 S는 입대를 했다. 나는 다시 서울에 올라가 두어달 일을 하며 지냈지만 그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다시 가을과 겨울사이를 지나던 어느날에 메신저로 그가 접속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알게된지 벌써 일년이나 됐네. 시간 참 빠르다. 메세지를 주고받고 우리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가끔 S가 생각이 나서, 그의 블로그를 가보고, 미니홈피도 들어가보고 했는데 뭔가 늘 연애중인 것 같았다.
나는 그 무렵 클럽에 빠져있었다.
그날도 클럽에 가던 버스 안이었다.
서울에 사는 대학동기 J에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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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봉에서 술을 마시다 잠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꼭 그와 함께했던 공기가 흐르는것만 같아 이제는 변할 수 없는 S의 미니홈피 속 음악을 신청해야겠다 생각하려던 찰나. 마침 사장님이 그 음악을 틀어줬다. 소름돋게도.
나는 가끔 S가 메신저로 보내줬던 음악들을 들으면 그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막 그립고 슬프고 그런건 아닌데 그냥 그랬다는 생각을 하는거다.
신기하게도 어떤 곡을 들으면 한참 후에 릴리즈된 곡인데도 그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서울 어딘가를 걷던 그때가.
e's_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