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깐의 외출을 하려고 나서려는 찰나, 뒤를 돌아보니 나와 제일 친한 고양이 귀봉이가 현관 너머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쟤는 나를 사랑하는걸까. 솔직히 집에 있는 시간에는 늘 내 옆에 붙어있는 녀석이라.. 실제로 제일 오래 키우기도 했고, 제일 친한거 같긴 한데, 얘는 무슨 마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를 할려고 글을 시작한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맺은 묘연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집에 묶어두고 있다는건 말하고 싶다. 얘네가 아니었음 아주 우울하게 살거나, 아직도 방탕하거나, 세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떠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스물한살때의 남도여행때 루트 중 어딘가는 고등학교때 여행할 코스를 적어본 그 루트와 같아서 놀란적이 있었다. 때론 나는 나중에 내가 어딘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또 내가 언젠가 그렸던 루트대로 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리곤 한다. 유럽은 블라디보스톡에 배를 타고 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코바로 간 다음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백야를 즐기고 북유럽으로 넘어가 유럽을 갈까, 세계여행은 중국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티벳으로 간 다음에 네팔을 지나 동남아로 넘어가서 호주를 거쳐 남미로 가는걸 그려보기도 하고.. 뭐 그랬다. 앞뒤를 합치면 세계여행이 되겠군 하면서 웃기도 했었지.
이런 얘기를 할려고 글을 시작한건 아니다.
어제 잠깐의 외출을 하려고 나서려는 찰나, 나를 바라보던 귀봉이의 모습을 보다 문득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아서 사지 멀쩡해서 일을 하고 놀고, 눈, 코, 입, 귀 가 멀쩡해서 감각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크게 아픈적이 있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친구와 집으로 돌아와 소주에 떡볶이 등 분식을 사서 먹다가 잠시 누워있다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한쪽으로 쓰러졌었던 일이 있었다. 취했나보다 하고 같이 있던 친구가 나를 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괜찮냐며 물어봤는데,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친구가 말로하기 힘들면 문자에 찍어보라고 했는데 그조차도 못했다. 119 불러줄까 하는 말에 나는 끄덕거렸는데 그것도 의사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거 같다. 이상하다고 느꼈던 친구는 바로 119를 불렀고, 잠시 마비가 돌아온 상황에서 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마비가 왔었다. 오른쪽 전체가 얼굴부터 시작해서 팔 다리에 감각이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고 주사를 맞고 어느정도 돌아와서는 바로 집으로 왔는데.. 다음날 동네 신경정신과를 가서 진료를 받고 시내의 mri촬영을 하는 곳에서 촬영을 하고 다시 경대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은건 뇌경색이었다. 빠른 조치덕에 돌아왔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이 뇌경색이 온 경우는 드물다고 했고, 입원을 해서 몇주간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때 폐의 혈관에 기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흉이 아니라 기형.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커서, 그곳으로 혈전들이 지나가다가 뇌로 흘러갔고 그게 뇌혈관을 막았다는 얘기였다. 폐를 잘라내는 수술도 했다.
뭐 암튼. 지금은 사지 멀쩡하게 잘 살아있다.
이런 얘기를 할려고 글을 시작한건 아니다. 그냥,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쓰고 싶었다.
그때 처음 느꼈던거다.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라고.
많은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하는 것들 중에 음악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고, 좋아하는 취향들, 사람들, 이런저런것들이 있다. 작은것에도 행복하자고 좌우명을 적었던거 같다. 고등학교때 졸업앨범에 좌우명을 적으라고 한것에 그런걸 적었다. 나는 지금은 솔직히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 잊기도 하며 살지만 그래도 순간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즐겁게 살자 라는 생각을 가지며 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된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기도 했었는데(그래도 이런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던듯), 극복이라기 보단 그냥 지금은 그런생각이 들지 않는다. 충분히 지금 삶에 대한 의미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때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거 같다. (지금은 사랑하는가 싶긴 하지만.) 나를 내버려뒀던 지난날들이 있었다. 그때 우울하고 힘들다 느꼈던거 같고, 그냥 주변에서도 그렇게 봤던거 같다. 지금은 어떤가. 나를 잘 챙기고 있는가.? 흠. 이정도면 챙기지 않나; 아직 멀었는거 같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을 아직은 좀 신경쓰니까. 좀 멀은거 같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 조차도 난데. 못날건 뭐고 나을건 뭔가 싶기도 하다.
어제 잠깐의 외출을 해서 한 연예인이 한 연예인의 죽음을 기리는 말을 봤다. 나는 늘 죽음앞에 어쩔줄 몰랐던거 같은데, 남은이들의 그 어딘가를 어루만져주는 글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중에 가장 크지 않나, 죽음이라는 것 말이다. 절대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 와중에도 넌 이런글이나 쓰고 있냐 할 수 있다. 삶은 다를지라도 살아있음은 동등하고, 죽음앞에선 동등한거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산 사람이 해야할 가장 큰 일은 그를 잘 보내는 것 뿐이다.
그리고 산 사람이 해야할 다음의 일은 삶을 살아가는 일이다. 그의 말대로 사랑하며,
'e's_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의 숙취 (0) | 2019.10.22 |
---|---|
- (0) | 2019.10.20 |
리스너 사공씨 이야기 -3- (0) | 2019.10.14 |
리스너 사공씨 이야기 -2- (0) | 2019.10.14 |
부산을 다녀왔다 (아웃풋, 15피트언더 그리고..) (4) | 2019.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