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삭제된 찰나의 기록들이 모이는 곳 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면, 우리은하에 존재하지만 만져지지 않는 오직 디지털로 이루어진 찰나의 기록들이 삭제가 되면 오는 곳이 바로 이곳 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지구에서 오셨군요.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기록들을 보내오는 곳이 바로 지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이 공간의 총 책임자 W입니다. 지구에서는 굉장히 많은, 그리고 다양한 사진들이 전송되더군요. 흥미롭습니다. 제가 이 공간의 존재성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구에서 보내오는 많은 사진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구에서 이곳으로 사진이 전송되는 시간은 사진가가 피사체를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셔터를 무르는 순간까지의 시간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사진은 사진가의 사진이 찍혀 데이터화 되어 다시 그 사진이 삭제되는 시간까지만 남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이 공간에 오래된 사진은 몇개 없습니다. 모두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그렇게 사라진 사진들은 다시 우리은하 어딘가로 다시 옮겨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전 아직 가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도 없었습니다.
필름의 사진 또한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아직 명확하게 구분짓진 못하였지만, 필름들의 기록도 전송되어집니다. 필름의 기록들은 바로 현상의 순간에 전송이 됩니다. 사진가가 찰나를 기록할 때가 아니라 현상이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전송이 되어 집니다. 전송속도는 디지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필름의 전송속도는 사진가가 피사체를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현상을 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이 걸립니다. 길게는 몇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더군요. 전송이 되어지는 과정에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 버릴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다른 운석과의 마찰로 인하여 소멸이 되어버릴 순간도 있었지만 저의 노력으로 인하여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필름의 기록들은 필름을 소유한 즉, 필름의 저작권자가 필름을 소각하였을 경우에 다시 삭제 됩니다.
다만 아쉬운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사진가가 찰나를 기록하기 위하여 셔터를 눌렀는데, 기록을 할 수 있는 저장공간이나 저장매체가 없는 경우입니다. 이 때는 지구는 물론이거니와 이 공간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기록은 무(無)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가 채 이곳으로 오기 전에 소멸된다고 들었습니다. 혹은 위의 경우에 다시 이 공간에서 사라진 사진들이 모이는 우리은하의 다른 곳으로 바로 전송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건 없습니다.
혹시, 되찾고 싶은 기록이나, 잃어버린 기록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곳으로 오십시오. 단, 이곳으로 온 사진을 찾으려면 당신의 영혼이 필요합니다.
잊지마세요. 이 찰나의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하세요.